여느 해에 비할 바 없이, 올해야말로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다.

나 개인에게도, 가까운 가족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작년 말 즈음 누나의 딸인 지호가 태어났다.

올 한해 가족 카톡방에 공유되는 지호의 모든 사진/영상들을 차곡차곡 잘도 정리해놓았다.

되도록 자주 누나네 집에 가려고 했다.

 

올초 방학에는 에브리피디아 활동을 아주 열성적으로 했다.

에브리피디아에 마음이 아주 많이 있었지만, 꼭 내가 아니어도 나만큼, 나 이상으로 열의를 가지고 활동하실 수 있는 분을 찾았고, 폭넓게 탐색한 끝에 그런 분을 만나 운명이구나 감격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잘 안되었다.

 

지금껏 강원도 양양 시골학교에서만 근무를 해서,

게다가 지금껏 살았던 관사에서 나오게 되어, 이렇게 된 김에 에브리피디아 활동도 할 수 있을까 해서 원주로 학교 이동을 하였다.

 

원주로 이사를 하는데, 계약해서 집을 구하는게 처음이고 예상외로 시간이 걸려, 아주 급하게 집을 잡고 이사하고 했었다.

방학중에 학기 준비를 좀 했어야 하는데, 에브리피디아 활동으로 바빠 정신이 없었다.

 

학기 개학하고 나서는 물론 정신없이 바빴다.

양양에서는 4명, 3명 연임으로 데리고 있었는데, 원주에서도 잘산다는 동네 붐비는 학교로 와서 삼십명 가까이 되는 애들 대하려니.

학급운영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했으면 좋았을텐데, 경황이 없었다.

 

수업 방법론과 관련해서도, 기존 학교에서는 애들 숫자에 제한이 있어, 모둠학습 등 일반적인 교실 상황에서 많이 논의되는 수업 방법론을 시도해보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연구가 충분히 되어 이런 저런 방법론을 수업에서 실현해볼 여유까지는 없었다.

세네명 데리고 했던 수업방식과 학급운영은 여기서는 불가했고, 그나마 어디서나 통용되는 전달식 수업으로 준비를 많이 했다.

 

연구하는것, 시나리오 짜는것을 좋아하기도 해서, 그쪽으로 힘을 많이 쏟았던듯 하다.

주중에 어떻게 지냈나 돌이켜보면, 방과후에 한두시간쯤 쉬다, 에피 관련 한두시간쯤 신경쓰고, 나머지 시간에 계속 수업준비하다 12시,1시 즈음에 겨우 마무리하고 자던 생활의 반복이었다.

주말에도 밀린 학교일 등등을 허겁지겁 해내기 바빠, 소진되는 듯한 생활이었다.

 

방향이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생활에서도 수업 준비 관련해 나름대로 체계가 잡혀서, 나중에는 매일 a4용지 한장에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서 수업을 했다. 매일 수업일기도 꼼꼼히 써서, 매주 학부모들에게 공유하고.

 

에피 관련해서는, 방학때 그랬듯이, 방학 중에도 에피를 맡아주십사 다른분들에게 두어번 진지하게 제안을 해보기도 했었지만, 잘 안되었다.

그러다 학기중에 테오도르에게 제안을 받아, 참 많은 고심끝에 결심을 하고, 예산 등 전반적인 사항을 여기저기 조언을 얻어 마무리가 겨우겨우 되었다.

 

직을 옮기게 되면 최소한 학기 전에 결정이 나서, 애들에게나 학부모들, 동료분들에게 인사드리는게 도리이기에 미리미리 결정이 나도록 하려 했는데, 두달 가까이 협상을 했는데도, 방학 며칠전에 겨우 결정이 났다.

결정이 나고, 동료분들과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학부모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양해의 말씀을 드렸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 학기말 처리를 하는것도 처음이어서, 안그래도 서툰 업무인데다 기억까지 가물가물한 학기말 작업을 주말 하루종일 하느라 힘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에브리피디아의 제안에 대해 많은 고심 끝에 내 입장을 보였는데, 그쪽에서 스무고개로 답변이 늦어져 결정나지 않은 불확실한 두어주가 참으로 힘들었다.

그렇게 결정이 되고, 작별 인사를 하고, 말씀을 드리고, 학기를 마무리했다.

 

그 여름방학이 하필이면 지난 겨울 미루어두었던 1정 연수를 받는 기간이었다. 또 미루려고 했는데 미루지 못했었다. 그만두는 마당에 제끼던 말던 못할것도 없지만서도, 4년이나 근무하는 셈인데 1정은 받고 끝내려, 연수가 있을 강릉에 방학한 그 다음주에 바로 갔다.

연수 기간은 참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연수에 참석하기는 하지만 의원면직 신청과 맞물려, 연수를 다 들어도 1정 자격증을 받을 수 있을거라는 답변조차 없었다. 들으나 마나한, 오로지 참여에 의미를 두는 연수. 

 

연수를 듣는데, 내가 워낙 프리하게 다니고, 강연하는 강사들마다 접촉해 명함을 주고 그러니 사람들이 독특하게 보았다.

한달남짓 연수인데, 그 절반은 조별모임. 4명이 한 모둠으로 활동을 하는데, 면면이 참으로 개성있는 분들이었다.

개중에 인연이 있어 이어지나 하였는데, 잘 안되었다.

 

강릉에서 있었던 1정 연수 기간에, 자주 거닐었던 강릉 밤거리에서,

이것으로 4년의 교직생활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그리고 이제 위태위태 걸어갈 길을 생각하니, 여러 감상이 아주 찐하게 들었다.

 

1정연수 마무리 하고, 근무했던 솔샘초에서 개학회식하는날 나를 불러,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그 후로, 본사와 결정난 사안에 대해 진행을 하는데, 참으로 더디었다.

그렇게 한달 반을 붕 떠서 있었으니.

 

사무실 구하는 것도 한달 반을 끌다 내가 무리하게 추진해서, 겨우 마련하였다.

마련하기는 하였는데 예산, 계약서 집행하는것이 참으로 더디어서, 맘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다 결과적으로는 잘 되어, 다른 팀원들에게도 할 말이 있게 되었다.

 

사무실을 구하고 주거지도 옮기게 되어, 부모님이 마련했던 창신동 집에서, 보일러도, 물도 안나오는곳에서 한달넘게 난민처럼 살았다.

무엇보다 출퇴근이 편도 한시간이 넘어 너무 힘들어 알아보다, 논스로 이사를 왔다.

 

부모님의 생활에도 인생에서 손꼽히는 변화가 있는 해였다.

내가 사무실 구하던 바로 그 즈음에, 매장 총 관리하는 운영사의 지역개발로 부모님이 십년 넘게 운영하시던 매장이 문을 닫고 다른 자리로 이전했다. 새로 이전한 자리는, 현재로서는 유지정도만 하시고.

무엇보다, 누나네 지호를 돌보시게되었고, 그것때문에 서울에서 이천으로 이사도 가시고.

 

요즈음 기본적으로 힘주어서 하는 일로,
에브리피디아에 몸담게 된 것과 마찬가지의 이유로,

에브리피디아에서 있었던 모든 논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사업진행으로까지 이어갈 수 있도록 소화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품이 많이 드는 일이어서, 올해 안에 일차적으로 마무리를 하였으면 하는데 불투명한 상황이다.

그밖에, 한국어판이 나오지 않은 현재로선 블록체인 업계에 폭넓게 접촉하며, 두드러지는 사업 계획하고 진행하고, 그때그때 시기 적절한 일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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